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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 대한 맑스주의 미학의 해석에 관하여 -'예술의 정치화'를 중심으로

진보평론  제9호 / http://jbreview.jinbo.net/

심혜련


1. 머리말


한국 사회에서 80년대의 극심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중심으로 한 거대 담론이 물러간 자리에 이제 담론의 주된 주제로 문화, 예술 등이 들어섰다. 어제의 문학 평론가들은 이제 문화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문화와 예술, 특히 대중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어제의 이데올로기 논쟁을 이끌었던 논객들은 이제 문화 산업이라는 주제를 논하고 있다. 대학의 많은 학과들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철학과 미학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이러한 현상들이 어느 분과보다도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분과가 바로 이러한 분과들일 것이다.

철학, 미학 등등의 학문 분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담론의 홍수, 무엇보다도 대중 문화와 영상 문화에 대한 담론의 홍수와 각 분과를 뛰어넘는 학제간의 연구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철학이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을 이야기해야만 하듯이, 예술 또한 시대를 초월한 그 어떤 초월적 미적 존재가 아니라, 바로 시대의 산물이다. 즉 예술은 바로 사회적 산물이다. 한 시대의 사회적 산물을 연구하는 작업은 바로 ‘지금’, ‘여기’의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제 아래 현실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대중들에게 줄 수 있는 대중 영상 문화를 학문적 영역에서 분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대중 영상 문화를 분석하는 작업이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여기서 대중 영상 문화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학문적 주제로서 대중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입장에서 대중 영상 문화를 읽어내야만 하는가가 바로 중요한 문제이다.

대중 영상 문화를 읽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우리에게 영국의 버밍햄 학파의 ‘문화 연구’가 소개되었다. 1964년 버밍햄 대학에 ‘현대 문화 연구 센터’(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가 성립되었다. 이 연구소의 연구에 의해서 비로소 대중 문화가 현대 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카데미 안에서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단지 하위 문화로 취급되면서 학문적 제 영역에서 배제되었던 대중 문화가 비로소 고전 문화, 고급 문화 등등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주)

*주){{ Hartmut Böhme, Peter Matussek, Lothar Müller, Kulturwissenschaft. Was sie kann, was sie will, Hamburg 2000, 11-13쪽 참고. }}

그러나 대중 문화 시대의 대중 문화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문화 연구’가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아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대중 문화를 학문적 영역에서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연구의 맹아는 이미 있었다. 그 맹아적 논의가 바로 1930년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 문화에 관한 논의들이다. 물론 이들의 주요 논지는 ‘문화 연구’의 논지와는 많이 다르다. ‘문화 연구’가 단지 하위 문화로만 취급되던 대중 문화가 가질 수 있는 긍정성에 주목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한 이론가들은 대중 문화에 대한 우려의 눈길로부터 자신들의 연구를 출발한다. 이들에게 대중 문화는 ‘문화’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하나의 거대한 ‘산업’에 불과하다.*주) 이러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보적인 대중 문화론을 형성한 사람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단지 대중 문화를 문화의 몰락으로 폄하하기보다는 또 다른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으로 파악한다.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대중 문화를 둘러싼 논쟁은 특히 현대의 대중 문화의 역할, 즉 대중 문화가 ‘대중 조작의 수단’인가, 아니면 ‘정보와 문화의 새로운 확산’인가에 대한 논의는 1930년대의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대중 문화를 둘러싼 논쟁과 거의 유사하다. 따라서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대중 문화와 대중 매체에 관한 연구는 문화 연구라는 장에서 하나의 고전을 형성한다.

*주){{ Theodor W. Adorno u. Max Horkheimer, Dialektik der Aufklärung. Philosophische Fragmente, Frankfurt am Main 1992, 128-132쪽 참고. }}

고전으로서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대중 문화론 중에서 특히 벤야민의 이론은 주목할만하다. 다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논객들과는 달리 벤야민은 일찍이 대중 문화에 대한 역할을 인정하고, 또 대중 문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그는 현대의 대중 문화가 주로 시각 매체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문화가 문자 문화에서 시각 문화로 전환하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일찍이 지적하기도 한다.

발터 벤야민은 최근에 와서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물이다. 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글들에서 벤야민의 논문들이 인용되고 있다. 벤야민은 한마디로 무엇이라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다. 철학자, 문예 비평가, 매체 비평가, 수필가 등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벤야민의 이론은 각각의 입장에서 달리 해석되고 수용된다. 이 글에서는 미학자로서의 벤야민에 주목해서 그의 미학 이론이 특히 맑스주의 진영내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벤야민의 예술 이론 중에서 정치적 경향이 강한 ‘정치의 예술화’에 관한 논의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맑스주의 미학 이론에서 그의 ‘정치의 예술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즉 벤야민 철학이 어떠한 맑스주의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가가 고찰의 대상이 아니라, 맑스주의 미학 내에서 벤야민 미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다. 벤야민 미학의 맑스주의적 해석은 다양한 측면에서 전개된다. 예를 들어서 아우라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라든가 또는 예술에서 기술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라든가 또는 예술의 자율성의 문제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둘러싼 논의만으로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맑스주의 미학 내에서 벤야민을 논의할 때 가장 많이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바로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2. 예술의 새로운 기능: 정치의 예술화(Die Ästhetisierung der Politik)에 대한 저항으로서 예술의 정치화(Die Politisierung der Kunst)


예술과 관련해서 기술 재생산 시대의 특성을 벤야민은 ‘아우라의 몰락’이라고 정의한다.*주1) 벤야민에게 아우라의 몰락은 예술의 자율성에 대해서 신비적으로 거창하게 포장된 가상의 몰락을 의미한다. 벤야민의 아우라는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주2) 벤야민은 일차적으로 전통적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 특성에서 보았다. 즉 원본성, 일회성, 진품성 등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물질적 특성에서 아우라적인 권위를 지니게 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수용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먼 곳의 일회적 현상(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주3)으로서의 아우라는 대중에게는 사실 “가까이 할 수 없음(Unnahbarkeit)”*주4)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 작품의 특성으로 인하여 예술은 종교적 제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고, 또 이러한 예술 작품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만이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의 대량 생산은 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의 민주적 확대이다.

*주1){{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 2,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477쪽.}}

*주2){{ 아우라에 개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음의 졸고를 참고하길 바람: 심혜련,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관하여」, 『시대와 철학』제12권 1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1. }}

*주3){{ Walter Benjamin, “Über einige Motive bei Baudelaire”,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 2,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647쪽. }}

*주4){{ 같은 책, 647쪽.}}

아우라의 몰락은 예술 작품을 둘러싼 많은 상황들에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의 수용 방식을 개인적 방식에서 대중적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를 의미한다. 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있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은 분명 종교적 제의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교적 제의 의식에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종교적 숭배 가치를 보존한다. 그러나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이러한 종교적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종교적 가치는 해체되고 이와 더불어 예술 작품의 새로운 기능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정치적 기능이다.*주1) 기술 재생산 시대의 새로운 형식의 예술 작품의 등장은 바로 예술의 종교적 기능 대신에 예술의 정치적 기능을 가져왔다.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인 정치적 기능과 관련해서 벤야민은 올바른 예술의 정치적 기능을 “예술의 정치화”*주2)라고 주장한다.*주3)

*주1){{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482쪽 참고.}}

*주2){{ 같은 책, 508쪽.}}

*주3){{ 예술이 새롭게 획득한 기능은 정치적 기능만은 아니다.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적 재생산 기술의 발전은 예술 작품의 내적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의 외적인 평가의 변화도 가져왔다. 다시 말해서 예술 작품은 자신의 권위를 잃어버렸고, 제의적 대상(Kultobjekt)으로서의 자신의 권위 대신에 오락 기능(Unterhaltungsfunktion)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획득했다. 이러한 오락적 기능과 관계해서 벤야민은 예술 작품은 이제 더 이상 제의적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향유의 대상’(Objekt des Genusses)으로서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대중은 비로소 대중 매체에서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에서 해방되어 즐김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왜 벤야민은 예술과 정치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가? 벤야민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이 시대적 공간에서 벤야민을 비롯한 벤야민 동시대의 사람들은 아주 극심한 정치적 변혁을 경험했다. 그들은 세계1차대전과 국가 사회주의를 경험했으며, 사회적 측면에서는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생산조건의 급격한 변화와 그 결과를 체험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많은 지식인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국가 사회주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지식인으로 변절하기도 하였다.*주) 바로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벤야민은 예술의 정치적 기능에 관심을 갖는다.

*주){{ Hans Heinz Holz, Philosophie der zersplitterten Welt. Reflexion über Walter Benjamin, Bonn 1992, 49-50쪽 참고 바람. 여기서 홀쯔는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지식인들의 가혹한 운명사이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벤야민의 예술 이론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매우 중요한 범주이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찰함으로써 그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자 한다. 게다가 그는 예술의 올바른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예술의 정치화’라고 규정하고, 자신의 이론을 “정치의 예술화”*주)와 대립시킨다. ‘정치의 예술화’란 바로 정치적 측면에서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선전, 선동을 위해 예술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벤야민이 ‘정치의 예술화’라고 비판한 것은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예술 사용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어느 이데올로기 집단보다도 국가사회주의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힘을 잘 인식하고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사용하였다.

*주){{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506쪽.}}

예술이 이렇게 특정 이데올로기를 위해 대중 조작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예술 자체내의 요인을 벤야민은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 즉 ‘탐미주의’(Ästhetizismus)에서 찾았다. 만약 예술이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예술 그 자체만을 문제삼고, 오직 아름다운 가상만을 추구한다면, 바로 여기서 예술이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내적으로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선다면 예술은 사회적 영향력이나 역할을 전혀 문제삼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근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탐미주의는 오직 예술 그 자체만을 염두에 둘 뿐이다. 예술이 그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것은 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정치의 예술화’의 기본 조건으로 작용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탐미주의에 명백하게 반대한다. 벤야민에게 예술은 하늘에서 떨어진, 또는 천재적 예술가가 어느 날 갑자기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산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산물인 예술은 어느 경우에도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특히 대중 매체로 인한 대중 문화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폭발적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벤야민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정치화’의 시작이다. 이것은 바로 벤야민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하나의 대안이기도 하다.*주)

*주){{ Julian Nida-Rümelin (Hrsg.), Philosophie der Gegenwart in Einzeldarstellungen. Von Adorno bis V. Wright, Stuttgart 1999, 92쪽 참고.}}

벤야민이 국가사회주의의 예술 활용에서 ‘정치의 예술화’의 전형을 보았다면, 반면에 그는 소비에트의 문화 정책에서 올바른 예술의 정치적 경향으로서 ‘예술의 정치화’의 전형을 보았다. 특히 그는 푸도킨(Vsevolod I. Pudovkin)과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영화에 열광하였다. 이들의 영화를 통해서 그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이 사회에서 늘 올바른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벤야민 또한 맹목적으로 이러한 예술 형태를 추앙한 것은 아니다. 그도 또한 이 예술 형태가 대중 조작의 가장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즉 그는 파시즘이 대중 매체를 통해서 대중들을 탁월하게 조직해 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주1) 국가 사회주의는 지도자의 숭배 의식과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아주 적절하게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했다. 이것은 바로 벤야민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의 예술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능은 예술이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에 가졌던 종교 숭배적 기능과 같은 것이다. 단지 종교적 대상의 숭배에서 지도자의 숭배라는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렇듯, 수행되는 지도자에 대한 숭배 강요를 벤야민은 “대중에 대한 강간”*주2)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주1){{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506쪽 참고.}}

*주2){{ 같은 책, 506쪽.}}

벤야민이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논문의 서론과 결론에서 자신의 새로운 예술 이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도를 명확히 밝혔듯이, 그는 새로운 예술 이론의 성립을 요구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예술 이론과 예술 개념은 파시즘에게 예술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그는 파시즘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반대로 혁명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예술 이론의 성립을 시도한다.*주)

*주){{ 같은 책, 473쪽 참고. }}

‘예술의 정치화’라는 벤야민의 테마는 예술의 자율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술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벤야민은 예술의 하나의 부정적 계기로 파악한다. 즉 예술은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제적인 삶과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예술은 예술 그 자체만이 자신의 목적이고 목표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술의 마술적, 종교적 특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또 이것으로 인하여 예술은 파시즘이 악용할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열어 놓는 탐미주의로 치닫게 된다. 탐미주의 예술은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정치적 현상에 무관심(Gleichgültigkeit)으로 대응할 뿐이다.*주) 이와는 달리 ‘예술의 정치화’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예술이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만 하고, 실제적인 삶과 늘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 벤야민은 이러한 탐미주의와는 다른 자신의 새로운 예술 이론과 파시즘과의 타협할 수 없는 관계를 “독일 파시즘의 이론”이라는 논문에서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탐미주의를 결국 파시즘의 전쟁을 찬양하는 이론으로까지 나아갔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길 바람: Walter Benjamin, “Theorie des deutschen Faschismus”,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II,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240쪽.}}

‘정치의 예술화’에 반대하는 ‘예술의 정치화’라는 벤야민의 주장은 파시즘과 탐미주의만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동시에 그 당시 좌파의 행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파시즘이 고전적인 대중 매체, 즉 사진, 광고, 영화 등을 자신의 선전 선동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것과는 반대로 그 당시 좌파들은 이러한 대중 매체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주) 제3제국 시절의 국가 사회주의의 선전 정책이 잘 반영된 주말 뉴스와 기록 영화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파시즘은 특히 영화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파를 위한 가장 강력한 선전 도구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즉 영화는 단지 하나의 대중 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투쟁 무기였던 것이다.

*주){{ 국가사회주의의 예술 정책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길 바람: Hildegard Brenner, Die Kunstpolitik des Nationalsozialismus, Hamburg 1963.}}

이러한 국가 사회주의의 적극적인 대중 문화 활용과는 반대로, 그 당시 좌파들은 대중 문화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대응했다. 한편으로는 대중 문화를 ‘문화의 몰락’으로서 하나의 ‘대중 조작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무시해버리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고급 문화’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프롤레타리아 문화’로서 대중 문화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좌파 내에서의 전반적인 경향은 대중 문화에 대한 폄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중 문화는 사회에서 이미 그 영향력을 강력히 발휘하고 있었다. 많은 프롤레타리아는 대중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좌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지 그들이 현실의 고통과 노동의 고단함을 대중 문화라는 허상을 통해 잠시 잊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포장된 선전, 선동에 대해 조롱하기도 하고, 선전과는 반대인 자신들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기도 하였다. 결국 대중 문화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좌파들의 입장은 대중 문화를 수용자의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관점에서 ‘누가 무슨 의도로 무엇을 만들었는가’에 주목했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수용하는가’라는 문제는 제외되었다.

벤야민의 좌파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좌익 멜랑코리”라는 논문에서 당시 좌파가 가지고 있었던 대중 매체에 대한 관점을 비판한다. 그는 이 글에서 좌파의 매체에 대한 생각은 매우 문제가 많음을 지적한다. 그들의 입장은 진정으로 현실에 대한 파악에서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지닐 수가 없다고 비판한다.*주1) 벤야민에 따르면, 그들이 지니고 있는 한계는 바로 부르조와적인 주체성과 정치적 현실간의 괴리에서 기인한다. 특히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고루한 문화, 예술관은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기술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이러한 딜레마를 벤야민은 한 마디로 “몰락한 시민층의 프롤레타리아적 흉내(die proletarische Mimikry der zerfallenen Bürgertums)”*주2)라고 정의한다.

*주1){{ Walter Benjamin, “Linke Melancholie”,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II,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281쪽 참고. }}

*주2){{ 같은 책, 280쪽.}}

벤야민에 따르면, 좌파들의 현실에 대한 잘못된 파악은 바로 탐미주의가 현실을 무시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벤야민은 하나의 대안으로서 ‘예술의 정치화’를 주장함으로써, 예술이 정치 영역에서 하나의 보조 수단으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정치적 색깔을 띠기를 요구한다. 즉 파시즘의 ‘정치의 예술화’에 맞서 공산주의는 적극적으로 ‘예술의 정치화’를 실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주)

*주){{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508쪽 참고. }}

 

3. 예술의 정치적 기능 - 벤야민 이론에 대한 맑스주의적 해석


1972년 벤야민 탄생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된 논문집에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도 벤야민은 중요하다: 그로부터 오늘날 정신이 나누어진다.”*주1) 이러한 하버마스의 진술은 벤야민 사후 독일에서 벤야민 이론의 수용사의 지평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이다. 벤야민이 다양한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듯이, 그의 이론 또한 후대의 이론가들 각자의 학문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이 점을 바로 하버마스가 지적한 것이다. 이 글에서 하버마스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있었던 벤야민 연구의 활성화와 관련해서 벤야민 이론의 수용을 6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주2) 그 중 하나가 바로 68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독일에서의 새로운 사회 운동과 맞물려 하나의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던 벤야민 미학에 대한 맑스주의 미학의 해석이다.

*주1){{ Jürgen Habermas, “Bewußtmachende oder rettende Kritik - die Aktualität Walter Benjamin, in: Siegfried Unseld (Hrsg.), Zur Aktualität Walter Benjamin, Frankfurt am Main 1972}}

*주2){{ 같은 책 175-177쪽 참고. 필자는 이 글에서 벤야민 해석을 둘러싼 6가지 입장을 소개하지는 않겠다. 다만 다양한 해석들 중 하나의 해석 경향이었던 맑스주의 미학의 벤야민 수용만을 문제삼겠다.}}

60년대 말 지나친 반공주의와 권위적 사회 체제에 반대해서 발생했던 독일의 68사회 운동은 반권위적인 새로운 정치 체계를 꿈꾸는 ‘정치 운동’이자 동시에 일상 생활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과 문화 양식을 실현하고자 한 ‘문화 운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주1) 68사회 운동이 문화 운동적 지향점을 가지게 된 배경으로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급속히 수입된 미국의 대중 문화에서 하나의 반권위적인 대안적 문화를 경험한데서 기인한다. 68사회 운동 세대들은 미국의 대중 문화를 통해 기존의 문화 권력과 문화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했다.*주2) 독일에서 기존의 문화 이론가들이 미국의 대중 문화를 단지 하나의 하위 문화로 폄하하는 것과는 달리, 젊은 세대들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대중 문화를 하나의 대안 문화로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주1){{ 이희영, 「한국 80년대 세대의 초상화: 독일 68세대와의 비교」, 『1980년대 혁명의 시대』, 이해영 편, 새로운 세상, 1999, 378쪽 참고.}}

*주2){{ 같은 책, 375쪽 참고.}}

대중 문화의 영향력은 단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중 문화의 영향력은 소위 기존의 ‘고급 문화’에까지 매우 컸다. ‘고급 문화’의 영역에 속하는 미술 분야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대중 문화의 표현 방식, 스타일 등등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 분야에서 대중 문화적 계기들은 적극적으로 배척되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도 하였다. 즉 대중 문화는 ‘하위 문화’, 기존의 전통적 문화는 ‘고급 문화’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주1) 더 나아가 기존의 전통 문화가 가지고 있던 예술의 권위, 예술의 자율성, 일상 생활로부터의 예술의 분리 등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면서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흐름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바로 일상 생활과 예술을 분리시킴으로서 예술의 ‘특별한 지위’를 고수했던 입장과는 달리 일상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일상 세계에서의 미학’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을 탄생하기에 이르렀다.*주2)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예술만을 위한 예술’과 결별하고, 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예술, 사회적으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예술을 꿈꾸었다.*주3)

*주1){{ 현대 미술과 대중 문화의 상호 관계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길 바람: 이영욱, 「현대 미술과 대중 문화: 양자의 관계가 제기하는 몇 가지 미학적 질문」, 『미학』제30집, 한국 미학회, 2001, 367-391쪽.}}

*주2){{ Bazon Brock, “Ästhetik in der Alltagswelt und Emanzipation der Wünsche”, in: Marie Luise Syring (Hrsg.), Um 1968. konkrete utopien in kunst und gesellschaft, Köln 1990, 183-185쪽 참고. }}

*주3){{ S. D. Sauerbier, “Versuch über Vermitteltheit und Herrschaftslosigkeit, über Befreiung der Sinne und der sinnlichen Erkenntnis”, in: Marie Luise Syring (Hrsg.), Um 1968. konkrete utopien in kunst und gesellschaft, Köln 1990, 186-191쪽 참고}}

이러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들의 이론적 대안으로서 벤야민의 이론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벤야민은 기존의 다른 이론가들과는 달리 대중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 운동적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일찍이 대중 문화를 학문적 주제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대중 문화를 다른 이론가들보다 일찍 철학과 미학 분야에서 학문적 주제로 인정했기 때문에 벤야민 이론에 관심이 커진 것은 아니다. 벤야민 이론에 대한 관심은 바로 대중 문화를 바라보는 벤야민의 시각에서 기인한다.

벤야민에게 대중 문화는 문화의 몰락과 예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문화와 예술의 탄생을 의미한다.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적 기술 재생산성의 발전으로 인하여 많은 복제가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이 탄생했다.*주) 바로 이것이 사진, 광고, 영화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예술은 기존의 예술과 다르게 태생적으로 원본(Original)을 소유하지 않는다. 또 이 예술 형식은 생산과 소비 모두 대량이라는 방식에 근본을 두고 있다. 즉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 소비를 전제로 한 예술 형태이다. 즉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는 대중 문화는 이전의 전통적 예술이 가지고 있던 예술의 신비적 권위인 아우라(Aura)로부터 해방되었다. 예술의 신비적 권위와 종교적 제의로부터 벗어난 대중 문화 시대의 예술은 이제 다른 기능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정치적 기능이다. 바로 이러한 벤야민의 접근 방식에서 68이후의 새로운 세대는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주){{ 현대의 대중 문화 연구에서 왜 벤야민이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음의 졸고를 참고 바람: 심혜련, 「대중 매체에 관한 발터 벤야민의 미학적 고찰이 지니는 현대적 의의」, 『미학』제30집, 한국 미학회, 2001, 169-172쪽.}}

맑스주의 미학은 유물론적 입장에서 벤야민의 예술 이론을 하나의 대안적인 맑스주의적 예술 이론으로서 적극 해석하는 입장이다.*주1) 리엔하르트 바브르찐(Lienhard Wawrzyn), 미하엘 샤랑(Michael Scharang) 등이 이 입장에 속한다. 이들은 벤야민의 예술 이론을 단지 예술의 지평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이론적 지평에서 보고자 시도하였다. 즉 순수 이론적인 영역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그리고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단지 이론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올바른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으로 파악했다.*주2) 그들에게 벤야민의 이론은 하나의 이론의 정치화에 대한 그리고 실천을 위한 하나의 좋은 본보기를 의미했다.

*주1){{ 벤야민 이론의 맑스주의적 해석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사람은 벤야민의 오랜 친구인 숄렘(Gerschom Scholem)이다. 그는 벤야민 저작에 맑스주의적 요소가 있음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맑스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다. 숄렘은 맑스주의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벤야민 저작을 하나의 종교적 저작으로 파악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고하길 바람: Gerschom Scholm, “Walter Benjamin und sein Engel”, in: Siegfried Unseld (Hrsg.), Zur Aktualität Walter Benjamins, Frankfurt am Main 1972, 87-138쪽.}}

*주2){{ Ansgar Hilach, “Zur Neubestimmung der Gegenwart in Walter Benjamins Kunstwerk-Thesen”, in: Ästhetik und Kommunikation, Heft 9, April 1975, 12쪽 참고.}}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둘러싼 논쟁*주1)에서 특히 맑스주의적 해석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즉 그들은 벤야민이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아우라의 몰락을 지적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또 벤야민의 그러한 논의를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가상의 파괴와 연관시켜서 더욱더 발전시켰다.*주2) 맑스주의적 미학의 입장에서 벤야민 예술 이론은 철저히 ‘예술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기본 명제에 적합한 이론이다. 벤야민의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 이론은 기술 재생산 시대라는 사회 구성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그에 대한 벤야민의 논의는 바로 “새로운 생산 조건들과 새로운 사회 구성체 그리고 대중이 예술 생산에 작용을 한 것인지 아닌지”*주3)를 문제삼는 이론이다. 맑스주적 미학 이론에서는 사회적 생산 조건을 무시한 예술에 대한 고찰과 예술의 수용 과정에서 대중이 고려되지 않는 고급 예술이나 전위 예술만을 문제삼는 것을 하나의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한다.*주4) 예술에 대한 엘리트주의와 부르조아적 예술관이 후기 저작을 중심으로 한 벤야민 이론에서는 극복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파악한다. 즉 벤야민의 예술 이론에서 예술의 기능 전환을, 그리고 예술이 종교적 제의 또는 특권 계급을 위한 제의적 기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긍정적 계기를 보았다.

*주1){{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둘러싼 맑스주의적 입장과 아도르노적 해석의 입장의 논쟁에 관련해서는 필자의 다음의 졸고를 참고하길 바람: 심혜련,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관하여」, 『시대와 철학』제12권 1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1, 149-159쪽.}}

*주2){{ Michael Scharang, Zur Emanzipation der Kunst, Berlin 1971, 12-17쪽과 Lienhard Wawrzyn, Walter Benjamins Kunsttheorie, Darmstadt 1973, 25쪽 참고.}}

*주3){{ Michael Scharang, Zur Emanzipation der Kunst, Berlin 1971, 12쪽.}}

*주4){{ 쟈네트 월프, 『예술의 사회적 생산』, 이성훈, 이현석 옮김, 한마당, 1991, 118-126쪽 참고.}}

맑스주의 미학내에서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에 주목하는 점은 바로 ‘투쟁 가치로서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예술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의 선전 선동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을 이들은 높이 평가한다. 즉 예술이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구체적 사회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또 때로는 무관심하게 존재하는 양식은 현실 파악에 대한 예술의 직무 유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맑스주의 미학 내에서 예술의 정치화와 관련해서 벤야민 이론에서 주목하는 점은 바로 대중 문화에 대한 벤야민의 선진적인 고찰이다. 대중 문화의 급속한 전파와 확산, 그리고 그곳에서 기존 문화에 대한 대안을 본 ‘매체 낙관론자(Medienoptimismus)’은 벤야민 이론에서 예술적 기술 재생산성에 대한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규정들에 주목한다.*주) 특히 이들은 아도르노가 대중 문화를 수용자의 관점이 아닌 생산자의 관점에서,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대중 문화의 물신적 성격을 비관론적으로 고찰한 것과는 달리, 수용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대중에 대한 믿음을 근거를 두고 전개한 벤야민의 대중 문화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주){{ Horst Bredekamp, “Der simulierte Benjamin”, in: Andreas Berndt u.a.(Hrsg.), Frankfurter Schule und Kunstgeschichte, Berlin 1992, 120쪽.}}

벤야민 당시의 많은 좌파들이 새로운 매체에 고답적으로 대응했던 것과 같은 대응 방식이 60년대 말에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들에 대해서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는 단지 매체에 대하여 도덕적 분노를 가지고 반응하는 태도를 “좌파적 비판이 지닌 문화적 고답성”*주1)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의 대다수의 많은 좌파들은 새로운 매체 현실에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현실의 매체와 그것이 지닌 혁명적 잠재력 사이의 모순에 무관심했다.*주2) 좌파들은 대중 문화가 잠재적으로 가지는 대항 문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주3) 대중 문화가 대항 문화로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바로 벤야민이 언급한 ‘정치의 예술화’라는 것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따라서 엔첸스베르거는 좌파 이론내에는 매체에 대한 이론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면서, 하나의 예외적 이론가로서 벤야민을 높이 평가한다.*주4)

*주1){{ 한스. M.엔첸스베르거, 「미디어 이론의 제요소」, 『뉴미디어의 영상미학』, 권중운 편역, 민음사, 1994, 172쪽. }}

*주2){{ 같은 책, 175쪽.}}

*주3){{ 같은 책, 176쪽 참고.}}

*주4){{ 같은 책, 195-198쪽 참고.}}

벤야민 이론을 하나의 투쟁 가치를 지닌 정치적 실천으로 파악한 맑스주의적 해석과 관련해서 헬무트 잘칭어(Helmut Salzinger)의 지적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는 당시의 맑스주의적 벤야민 해석과 관련해서 이 시도를 “계급 투쟁으로서의 예술 비평”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이 논의와 관련해서 잘칭어는 이러한 시도들이 벤야민 이론을 계급 투쟁의 측면에서 예술에 있어서의 투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계급 투쟁의 수단으로 과대 평가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지적은 한편으로는 타당하다. 그에 따르면 벤야민의 예술 이론은 하나의 직접적인 정치적 실천이 결코 아니었으며, 단지 그의 이론은 하나의 유물론적이고 미학적인 실천일 뿐이라는 것이다.*주) 그러나 벤야민의 미학적 실천은 정치성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찰과 숙고 속에서 벤야민의 미학적 고찰이 탄생했다. 비록 그의 미학 이론을 직접적인 투쟁 가치를 지닌 하나의 투쟁 무기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그의 미학 이론에서 정치적 성격을 배제해서도 안된다. 두 가지를 다 고려할 때만이 벤야민의 예술 이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성립된다.

*주){{ Helmut Salzinger, Swinging Benjamin, Hamburg 1990, 58-59쪽 참고.}}

 

4. 맺음말


예술의 정치적 기능에 대한 벤야민의 관심, 특히 대중 매체에 의해서 매개된 대중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 사회, 정치적 요인에서 대중 문화에 대한 벤야민의 관심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벤야민 당시 독일의 사회 정치적 배경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독일은 아주 역동적으로 사회 정치적 충돌이 존재했다. 세계사적으로 아주 극단적인 파시즘인 나치의 등장은 모든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혼란 그 자체로 몰고 갔다. 두 번째 요소로는 이러한 국내 배경뿐만 아니라, 국외적인 요소도 작용했다. 즉 소비에트에서 급격한 혁명적인 문화적 변화가 벤야민에게 영향을 주었다.*주)

*주){{ Gerhard Wagner, Walter Benjamin. Die Medien der Moderne, Berlin 1992, 45쪽 참고.}}

급변하는 사회 정치적 정세 속에서 특히 파시즘의 등장과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는 상황 속에서 벤야민은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예술을 꿈꾸었다. 현실에 무관한 그리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예술은 벤야민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울한 현실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암울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초기 소비에트의 영화는 벤야민에게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것은 대중 문화이자 동시에 혁명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대중 문화에 대한 믿음의 근거는 또한 그의 대중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대중은 영화의 오락적 성격을 즐기는 수용자임과 동시에 비판자이기도 하다.*주)

*주){{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497쪽 참고. }}

그러나 사실 벤야민이 ‘정치의 예술화’의 전형으로서 높이 평가했던 소비에트의 영화도 그 이후 전개 과정에서 그가 비판했던 ‘예술의 정치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예술의 정치화’와 ‘정치의 예술화’는 동어 반복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이 가지고 있었던 대중 매체와 대중에 대한 믿음은 유토피아적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벤야민의 이론이 또는 그의 이러한 믿음이 벤야민이 꿈꾸었던 것과 다르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이러한 벤야민의 이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론이든 그것이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예술, 특히 대중 문화에 대한 태도에서 아직도 유효한 것이 있다면, 바로 벤야민이 대중 문화의 영역 밖에서 대중 문화를 관찰한 것이 아니라, 대중 문화 안에서 그들의 언어로 대중 문화를 비판했다는 데 있다. 대중 문화가 단지 하위 문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학문적 제 영역에서 제거해버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지니고 있는 내적 언어의 구조를 가지고 진지하게 또 비판적으로 그것을 검토하고 그것이 가지는 긍정적 잠재력을 보았다는 것은 대중 문화를 연구하는 현대의 많은 이론들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대중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내치지도 않았던 그의 이론은 단순히 대중 문화론이기 보다는 하나의 사회 비판 이론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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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enjamin, “Theorie des deutschen Faschismus”,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II,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Walter Benjamin, “Linke Melancholie”,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II,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Walter Benjamin, “Über einige Motive bei Baudelaire”, in: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 2, Unter Mitw. von Theodor W. Adorno und Gerschom Scholem, Hrsg. von Rolf Tiedemann und Hermann Schweppenhäuser, Frankfurt am Main,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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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대중매체에 관한 철학

심혜련


 1. 도  입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으나 근접하기 어려운 철학자이며 미학자이다. 따라서 단편적으로 이해되고 언급되고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보여진다. 본 강의에서는 그가 대중매체에 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 지 사진과 영화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2. 벤야민의 생애와 저작

벤야민은 1892년 6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런데 그가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벤야민이 그 일생에서 지고 가는 사상적 짐이 되었다. 그는 베를린에서의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후 1911-1912년에 걸쳐 독일 남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에서 철학과 문화를 공부하고 베를린으로 다시 오게 된다.

1915년 그는 숄렘과(각주1) 교분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와 벤야민은 사후 출간된 [벤야민 전집]을 발행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벤야민은 그를 알게됨으로써(이 사람도 유태인) 그 스스로가 유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유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하게 된다. 특히 유대교의 카발라(유대교 신비주의)는 그의 사상적 한 축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이 신비주의적 요소를 띠게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벤야민은 1917년 결혼하고 스위스 베른에서 계속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독일 낭만주의 예술 비평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학위논문을 수여받는다. 1923년 벤야민 사상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는 아도르노(T. Adorno)를 알게된다. 아도르노 역시 벤야민 사후에 숄렘과 같이 전집 간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벤야민의 지인이다.

1923년에는 교수자격 취득논문으로 [독일 비극의 기원]을 제출했으나 당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보수적 학풍을 이유로 벤야민의 논문을 거절했다(각주2).

1924년에는 카프리 섬에서 장기간 거주하게되었는데, 이때 그는 브레히트와 라시스를 알게 된다. 라시스는 여류감독으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벤야민은 그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벤야민의 사상은 이전에 쓰여졌던 논문과는 구분되는 후기 예술사상이 정립되기 시작한다. 이전의 사상이 문학적이고 문화사적이었다면, 이후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고, 마르크스주의 예술을 형성하고 있다.

벤야민의 저술은 대체로 체계적인 긴 논문이라기보다는 짧은 형식의 글들이 많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그가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27년에는 {파사겐베르크}를 착수하기 시작했으나 완성되지 못한 원고로 남아있다. 이 책은 매우 두꺼운 원고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의 특징은 여기서 자기 스스로의 글은 남기지 않은 채, 오히려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인용문'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정리되지 않은 원고이기는 하지만 그의 사상적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28년에는 {독일비극의 기원과 일방통로}를 출판했고, 1933년에는 나치를 피해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벤야민은 개인적으로 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리라는 도시는 그에게 '도시'로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욕구, 시련, 만족들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였다(각주3). 여기서 아도르노와 벤야민간의 대중문화에 관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도르노가 대중문화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면, 벤야민은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각주4).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연구소가 뉴욕으로 가게되고, 집으로부터의 원조가 끊어짐으로써 벤야민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예술 이론에 대한 완성을 이루었다. 1926년 그의 대표작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미루기로 한다.

1940년에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스페인으로의 남진이 이뤄지자, 아도르노를 통해 벤야민은 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스페인 국경에서 결국 출국을 거절당하게 된다. 이때 벤야민이 의도적으로 몰핀을 과다 복용하고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 그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각주5).

 

3. 벤야민의 사상은 어떻게 수용되었는가

68운동 이전까지 벤야민은 유럽 지성인들에게는 잊혀진 존재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데에는 그가 대학과 아무런 연계가 없었다는 점이 한 몫하고 있다. 그러나 68운동 이후에 다른 이론적 대안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벤야민의 이론이 재발견되었다. 특히 후기 벤야민 이론이 갖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적 성향과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잘 다루지 않았던 부분들을 그의 이론에서 찾음으로서 문화·사회운동의 이론적 대안으로서 벤야민이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벤야민의 이론은 유럽사회에서 새롭게 수용되었고,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하버마스는 "벤야민에서 우리의 정신이 갈라진다"라고(각주6) 언급할 만큼 유럽 사회에서 벤야민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4. 벤야민의 대중 문화에 대한 이론적 고찰

이상이 벤야민의 생애와 주요 저작들, 그리고 유럽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의 사상적 비중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시 논의의 중심인 대중문화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돌아가기로 하자.

'대중문화'라는 주제는 영국의 버밍햄(Birmingham) 학파에 의해 이론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후 근 30년 간 대중문화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논의의 중심은 '그것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 관한 것이었는데, 대중문화가 일반적 지식이나 '인식을 넓혀주는 새로운 자료원'인가, 아니면 대중을 속이는 '조작의 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논의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의 논의되고 있는 논의 구조가 그들에게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아도르노의 대중문화이론과 벤야민의 이론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4-1. 기술 재생산과 아우라의 몰락

벤야민은 대중문화를 철학적·미학적 분야에서 학문적 주제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그가 파리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였는 지를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7). 1930년대 당시 많은 이론가들이 대중문화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 평가하여 논의조차하지 않았던 점과 매우 대조되는 사실이다. 그는 대중문화를 하급문화로 차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은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현실성, 영향력을 문화적 흐름 속에서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벤야민 사상의 주된 개념은 [기술재생산]과 [아우라의 몰락]으로 구성된다. 기술 재생산 시대에 갖고 있는 특징을 그는 [아우라의 몰락]에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우라'는 원래 종교적 개념(유대교)이지만, 이것이 철학적으로 전화된 것은 벤야민에 의해서이다(각주8).

 

4-2. 아우라의 의미

벤야민에게 있어 아우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객관적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을 수용자가 갖게되는 주관적 경험 요소이다. 객관적 특성으로서의 아우라는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의 예술작품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에는 재생산, 복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원본성'을 의미한다. 또한 한번 생산하면 끝나고 비록 다시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결코 같은 그림이 될 수 없다는 '일회성'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술 재생산 시대 이전에는 복제된다고 하더라도 '복제된 것'과 '진품'은 확연히 구별될뿐더러 그 의미조차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은 작품의 '진품성'이다.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아우라는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이다. 이것은 바로 예술작품의 일회적인 현존재를 규정하며, 바로 아우라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것들만으로 아우라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우라는 객관적 속성 외에도 인간의 경험과 주관에 의해 형성되는 주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아우라는 '귀한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종교적 권위를 보장받아야 하는 중세시대에는 종교적 차원에서 이것을 사용하였다.

성당에서 마리아 상을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은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을 갖고 성당에 서 있다(객관적 속성). 그러나 성당으로 들어가면 성스러운 그림들과 오묘한 빛깔을 그려내는 스테인드글래스로 둘러 쌓여 있고, 장중한 파이프 오르건 음악이 흐른다. 이 공간에 한 기도자가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공간적 분위기는 마리아 상 앞에 있는 수용자에게는 마리아 상이 단순히 하나의 물리적 존재로서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수용자가 신비적·종교적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존재로서 다가오게 된다. 그는 아마 마리아가 현현하였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종교적·제의적 가치가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는 모든 아우라의 근본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아우라에 관해서 벤야민은 매우 서사적인 기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름날 햇볕이 빛날 때 먼 등성이에 있는 나뭇가지에 햇볕이 반짝이고, 이것을 보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느낄 때, 이것이 바로 아우라이다" 이때 아우라는 자연과 관찰자간의 지각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낄 때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으로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감정의 상호교류성과 상호 관련성으로서의 아우라를 의미한다.

 

4-3. 기술 재생산 시대와 아우라의 몰락이 갖는 의미

아도르노적인 입장에서(대중문화 비판적 입장 ― 옮긴이 주) 벤야민을 수용하는 사람은 아우라의 이중성 가운데 주관성을 강조하면서 아우라의 몰락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객관적 특성으로서 아우라를 강조하고 있다. 기술 재생산 시대에서는 예술작품이 수 없는 복사가 가능해 졌을 때,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었던 아우라는 몰락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매체 미학 논쟁의 양 대 줄기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가 벤야민에게 있다고 본다. 현대 미학논의인 매체미학에서는 벤야민에게 아우라의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아우라의 몰락은 무엇인가? 객관적 특성으로서는 기술 재생산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식의 예술, 원본의 부재, 일회성이 아닌 '다수성' ― 사진 및 영화는 진품성을 묻지 않으며(대량복제가 가능하기 때문) 따라서 기술 재생산 시대에 아우라는 몰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관적 입장을 보면, 경험으로서의 아우라이기 때문에 아우라의 몰락과 더불어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작품을 분석하면서 이것의 특징만을 분석한 것은 아니다.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이 없어진 것 뿐 아니라, 기술 재생산 시대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지각방식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전에는 '집중성'을 요구했다면, 이후 나타나는 사진, 영화, 광고에서는 촉각적 지각과 정신 ― 예술작품에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의 지각구조의 변화도 함께 요구한다고 보고 있다. 아우라의 몰락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기술 재생산은 해체되어야 한다.

벤야민은 기술이 새로운 예술을 현실화시키고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닌 매체 그 자체로 보고 있다. 기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을 형상화 할 때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아우라의 몰락은 벤야민에게 기술 재생산 시대의 긍정적이고 필연적인 현상, 예술일반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시작(대중예술)인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뜻을 갖고 있는 아우라의 몰락은 먼저 예술의 가치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생산의 논리에 따라 더 이상 예술작품은 성당이나 궁전, 귀족의 정원에 숨어져 있는 '은닉의 대상'이 아니다(예술작품의 민주성 확보). 그리고 예술의 자율성에 의해 탈신비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예술의 기능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예술이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오늘날에는 정치적·오락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더 이상 예술이 숭배의 대상이 아닌 유희의 대상으로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5. 구체적 예

 5-1. 사진

사진은 예술작품을 향한 민주적 접근 가능성을 확대시켰다.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을 접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벤야민은 사진의 등장을 전통적 회화와의 관계에서 '투쟁적' 존재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진의 작은 역사}라는 책에서 당시 사진에 관한 논쟁이 '예술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고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사진으로서의 예술(복제품)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사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야민이 사진의 등장에 부여했던 의미는 예술작품의 기계적 복제 가능성이다. 이것은 예술작품을 향한 민주적 접근 가능성의 확대를 의미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예술작품이 있을 때, 이것은 예전에는 늘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사진이 가져온 예술작품의 접근성은 매우 확대되게 되었다. 예술작품에 대해 가질 수 없었던 막연한 두려움, 신비감, 이를 통한 아우라적 권위가 사진의 등장과 더불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사진의 등장으로부터 예술작품의 탈아우라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은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크게 초기 사진과 후기사진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기계적 복제 가능성으로 인해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은 몰락했으나 아우라적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초기 사진에 남아있는 아우라의 잔재는 초기 사진이 갖는 기술적 한계에 기인한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을 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고 또한 인공조명기가 없었기 때문에 공동묘지 같은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사진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곳에서 여러 시점들의 모습이 하나의 평면에 대입된 것이 이 당시 사진이라는 것이다. 당시 사진의 이러한 모습은 전통적 회화에서 갖고 있었던 미묘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초기 사진의 대상은 인간의 얼굴이었다. 따라서 사진이 등장하면서 전통 회화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바로 초상화일 수밖에 없었다. 회화가 갖고 있던 초상화의 기능을 사진이 빼앗은 것이다. 초기 사진이 담아내는 얼굴, 바로 여기에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씌워질 수밖에 없었던 아우라적 모습이 담겨있다고 벤야민은 보고 있다.

그러나 후기 사진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우라는 몰락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몰락은 19세기 프랑스의 사진작가 아뜨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아뜨제는 '텅 빈 거리', '스산한 거리'를 주로 자신의 사진에 담아내었는데,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은 탓에 그의 사진에는 빛의 미묘함이 제거된 구분성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인간만의 얼굴을 담아내는 사진의 역할로부터 벗어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사진 속에 담겨져 있던 아우라는 제거되고 숭배적 가치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벤야민은 아뜨제로부터 진정한 아우라의 몰락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작은 사진의 역사}에서 벤야민은 아뜨제의 사진을 구체적으로 "아우라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사라지고 현실에 덧칠된 아우라의 모습을 제거했다"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아뜨제로부터 아우라적인 대상이 진정한 해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5-2. 영화

벤야민에게 있어 영화는 새로운 미학적 대상이었다. 영화의 등장으로 벤야민이 주목한 것은 대중적 수용이라는 형식이었다. 이전의 예술작품은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영화는 그 속성상 대중적 수용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목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는 곧 '대도시의 등장'을 의미하고, 또한 '영화관'은 대중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라는 점이다.

개인적 수용과 예술작품에 대한 집중은 동일화 될 수 있지만(침잠과 집중을 통해 예술작품에 빠져드는 것) 비판적이기 위해서는 그 작품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다. 대중적 수용은 비판적 계기를 확장시키는 방법으로 그는 받아들이고 있다(이 점에서 아도르노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 정리자 註). 벤야민 시대의 다른 학자들이 영화가 갖고 있는 '대중 조작적 측면'을 고민했을 때, 벤야민은 이것이 오히려 대중비판성을 확보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 대중에 대해 스며있는 벤야민의 유토피아(대중에 대한 믿음)를 엿볼 수 있다(각주9).

벤야민의 영화이론은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각작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예술작품이 침잠적·집중적 태도를 요구했다면, 기술 재생산 시대에는 정신 오락적·분산적 지각을 요구한다는 차이를 지닌다. 이런 지각작용이 가장 적합한 분야가 바로 영화인 것이다.

정신 오락적·분산적 체험에서 중요시한 것은 영화에서의 몽타주 기법이다. 영화등장 이전, 연극과 문학에서는 논리적이고 연대기적으로 시·공간이 배열되었다. 그러나 몽타주 기법의 도입으로 인해 비논리적이며, 또한 시·공간에 대해서 임의적인 재배열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당연한 구조 같지만, 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혁명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정적이지만 영화는 동적이다. 기차의 발명되고 그리고 기차 여행을 통해 이미 사람들은 파노라마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당시 예술은 이런 신비한 경험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요컨대 체험은 이미 동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예술은 이것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영화만이 이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기차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영화가 담아낸 것이다.

몽타주 기법은 관객에게 '쇼크'를 줄 수 있다고 벤야민은 말하고 있다. 이 쇼크는 그가 말하는 새로운 지각 중 일부로서 텍스트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유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에 몰입되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식자층만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그들과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진정한 미적 향유가 기술 재생산 시대의 새로운 지각 요구로 인해 가능해 진 것이다. .

 

6. 벤야민 고찰이 갖고 있는 의미

벤야민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다른 연구자들과는 달리 대중문화 안에서 대중문화를 고찰하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안고 있는 폭발적인 힘을 그는 인정하고 있다(각주10). 그는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서 이들이 갖고 있던 대중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프롤레타리아를 스스로가 지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급문화를 향유하려는 이중적 태도(멜랑꼴)를 갖고 있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대중문화에는 큰 힘이 있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역으로 교육적인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주장이 바로 벤야민의 사상이다. 그는 이 점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가들로 러시아의 아이젠슈타인과 미국의 찰리 채플린을 꼽고 있다.

이후 에코가 대중문화에 대한 입장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부정적인 입장,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 안에서 분석하려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 중 후자의 선구자가 바로 벤야민이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컴퓨터라던가 다양한 영상매체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다양한 영상매체가 갖고 있는 영향이나 미학적·철학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루는 것이 매체미학이며 여기의 선구자가 벤야민이다.

 

주 1  숄렘은 유대교 근본주의자로서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 평생을 랍비로 보냈다. 그는 나치 시절 고통을 받고 있는 벤야민에게 끊임없이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을 권유했었다.

주 2  이 사실은 독일 대학 역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보수적 학풍도 원인이었으나 근본적으로는 심사자 자신도 이 논문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한 논문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이는 그가 매우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는 데에 기인한다.

주 3  {파사겐베르크}에서 "파리는 나에게 하나의 도서관이다. … 시내 안내 지도는 도서관의 열람표와 같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많은 프랑크푸르트학파들은 가장 대중문화적인 미국으로 피해갔고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벤야민은 파리에 계속 남아있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주 5  그가 죽은 다음날 스페인의 국경은 개방되었다. 단 하루만 기다릴 수 있었다면 그는 살았을 런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 역경은 한마디로 "불행" 그 자체였다. 그가 죽고 난 후 벤야민의 죽음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아도르노는 1925년 그의 부인과 함께 {벤야민 선집}을 출판하였고 1988년까지 {벤야민 전집}이 출간되었다.

주 6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종교철학인지, 문예예술인지, 철학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주의인지가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 7  그에게 있어 파리는 '철학적 텍스트'였다.

주 8  아우라는 유대교에서 '후광'을 뜻한다. 이 개념은 고대 희랍에서는 '입김'을, 카발라에서는 '연기', '미묘한 심기', '미묘한 종교적 기운'을 의미하고 있으며, 인간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영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로 '분위기', '묘한 느낌'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우라를 간질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예: 돌연스러운 발작을 아우라적 발작이라고 표현한다)

주 9  나치시대 영화관에 있었던 작은 소요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대중들은 강력한 정치선전 수단으로 사용된 영화에 의해 조작되지 않고 적극적·소극적 저항을 보였다는 것을 밝힌 결과가 있다.

주 10  애석하게도 이런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자들은 바로 나치였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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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Time

Cities are full of signs and images.

They created all kinds of them but also overwhelmed and then standardized.

I think human beings have divided into several classes in those spaces, which made them isolated.

Between mechanized tools like transportation and computer and organized social system they are always forced to survive taking their own destiny as security.

Otherwise they are only threatened with death and financial failure. They are vanished away like smoke.

If so what does the course of their life mean?

I'm sure of being the floating time though I can’t explain what it really is or where it came from.

It is drifting like unconsciousness on the other side of history and happening.

My series are searching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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